⑨ 맛은 잊었어도, 추억은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식당

‘레코드 부산’은 부산 추억의 장소를 독자들의 사연과 <부산일보> 소장 사진·기사로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부산 서면에 영광도서 인근에 있던 양식당 '호수그릴'의 내부 모습입니다. 야채스프와 스테이크와 돈까스 등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죠. 사진=최승규 씨 제공.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부산 서면에 영광도서 인근에 있던 양식당 '호수그릴'의 내부 모습입니다. 야채스프와 스테이크와 돈까스 등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죠. 사진=최승규 씨 제공.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

외식이 일상이 된 시대. 요즘은 ‘집밥’마저 식당에서 사 먹곤 하죠. 하지만 국민 소득이 높지 않던 시절,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할 수 있는 행복한 사치이기도 했습니다. 외식이 흔치 않은 기회였던 만큼, 그날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기도 하죠. 그 맛은 잊었어도, 어슴푸레하게나마 식당에 대한 기억들은 남아있습니다.

부산에는 지금까지 잘 운영되는 '노포'도 많지만, 이제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식당도 셀 수 없이 많은데요. 이제는 사라진 부산의 식당, 그곳에 담긴 독자들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 그때 그 시절

#호수그릴

서면 영광도서 인근에 있던 양식당 호수그릴의 외관. 현재는 이 자리는 횟집으로 바뀌었죠. 최승규 씨 제공서면 영광도서 인근에 있던 양식당 호수그릴의 외관. 현재는 이 자리는 횟집으로 바뀌었죠. 최승규 씨 제공

초등학생 때 같은 반 단짝 친구가 '호수그릴' 사장 아들이라 가끔 갔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그릴'로 끝나는 레스토랑 몇 군데 있었지만 호수그릴이 단연코 최고의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죠. 평범한 식사 자리로는 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주로 어르신 회갑 잔치나 졸업식 때 한 번 가볼 정도였습니다. 유럽풍 샹들리에와 피아노 연주가 인상적이었고요. 웨이터들은 깔끔한 양복 차림의 멋진 아저씨들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패밀리 레스토랑이 우리나라에 밀려오면서 이제는 추억의 식당이 됐지만 지금 그런 레스토랑이 다시 탄생해도 아주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산 부산진구 61세 문상구


#일 마레

서면 동보서적 위에 ‘일 마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있었죠. 당시 서면 소개팅 명소로 유명했어요. 저도 20대 후반에 여기서 두 번 정도 소개팅했는데 잘 안된 덕분(?)에 지금 아내 만났네요. 식당 들어가면 벽 기대앉는 자리엔 여성분들만 다 앉아 있었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아는 선배도 여기서 소개팅했는데 자리를 헷갈려서 다른 분 앞에 앉기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네요. / 부산 동래구 42세 김*준

#알렉산더

초등학생 때 달맞이 언덕에 있던 알렉산더 가끔 갔던 기억이 나네요. 축하할 일이 있는 특별한 날에 가는 곳이었어요. 음식보다는 공간이 특별했던 레스토랑이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어떤 음식을 팔았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외관도 화려했고 내부 공간이 이국적이어서 어릴 때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촌이랑도 같이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부산 해운대구 34세 이*영


■ 외식이 ‘일상’이 되기까지

과거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았던 시절,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할 수 있었죠. 졸업식이나 생일, 기념일 등에 큰마음 먹고 가곤 했습니다.

점차 국민 소득이 오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식생활 양식도 변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외식 문화가 익숙해진 거죠.

1989년 1월 26일 자 <부산일보> 기사는 '새 풍속도로 자리 잡는 외식지대'라는 기사에서 청소년층, 대학생층, 가족단위 음식점을 나누어 소개했는데요. 부산 서면 학원가를 중심으로는 작은 분식점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당시 500원 단위로 분식을 먹을 수 있는 '5백냥 하우스'가 인기를 끌었다네요. 또 서면역~부전역 지하상가와 남포동 지하상가 분식점도 청소년의 아지트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층, 대학생층, 가족단위 음식점 등을 소개하는 1989년 1월 26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부산일보DB청소년층, 대학생층, 가족단위 음식점 등을 소개하는 1989년 1월 26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부산일보DB

부산 대학가 앞에는 대학생들의 기호를 맞춘 식당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500원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저렴한 음식점에서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고 하네요. 특히 80년 후반에는 대학가 앞에 전통 주점이 즐비했습니다. 학생들도 이곳에서 술 한잔 기울이곤 했죠.

이 시기에는 가족 단위 외식도 크게 늘어났다고 하는데요. 보통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외식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금정산성 쪽에는 80여 곳의 염소 고기 집이 들어섰다고 하고요. 수영구 광안동 일대에도 불고기, 갈비, 양곱창, 횟집 등의 외식촌이 형성됐다고 하네요. 해운대 지역에는 갈빗집이 주류를 이뤘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외식 문화가 익숙해졌다지만, 가족 외식 평균 횟수는 1회 미만이었습니다. 1990년 1월 24일 자 <부산일보> '과소비 "과대광고·방송 책임 크다"'라는 기사는 '소보협'이라는 소비자 단체의 외식 관련 조사 결과를 인용했는데요. 조사 결과, 가족과 함께하는 외식이 월평균 0.978번으로 나타났습니다. 외식 한 번에 드는 비용은 평균 2만 5650원이었다고 하네요.

1990년대 중반부터는 외식 문화가 활발해지는데요. 식당의 종류도 더 다양해집니다. 피자, 치킨,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를 파는 식당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스테이크나 스파게티와 같은 양식 요리에도 더 익숙해지죠.

1997년 한국음식업중앙회에서 성인남녀 1500명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음식문화에서도 세대 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하는데요. 이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74.1%는 '식사는 꼭 밥이 아니어도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과반 이상이 '아직도 식사는 밥'이라고 응답했네요.

이 조사에 따르면 외식 유형도 선호하는 취향이 다르게 나타났는데요. 젊은 층은 한식보다 양식을 선호하고, 비싸더라도 맛있고 소문난 집을 찾아다닌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연령이 낮아질수록 '외식에 사용하는 돈은 아깝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고 하네요. 요즘도 비슷한 추세죠?

음식 문화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는 내용을 다룬 1997년 1월 7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40대 이상은 과반 넘는 인원이 음식 문화에도 세대 차이가 있다는 내용을 다룬 1997년 1월 7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40대 이상은 과반 넘는 인원이 "아직도 식사는 밥"이라고 답했고, 10대의 74.1%는 "식사는 밥이 아니어도 된다"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부산일보DB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 외식비부터 줄이기 마련이었는데요. IMF 직후인 1998년 9월 16일 자 <부산일보>에는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 결과가 실렸는데요. 지출을 크게 줄일 세부항목에 대해서는 '외식비, 의료보건비, 의류비, 교양, 오락 문화비 순으로 줄이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2000년 중반엔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이 과열 양상을 보입니다. 2005년 10월 27일 자 <부산일보>는'서면지역 외식상권 경쟁 뜨겁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뤘습니다. 빕스를 비롯해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베니건스, T.G.I 프라이데이스 등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이 모두 서면에 모였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서면 상권에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가 2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상권 안에서 2개의 점포를 운영했고, 빕스도 서면점에 이어 쥬디스 태화점을 추가 오픈해 '과열 양상'이라는 분석이 나왔죠. 패밀리 레스토랑 업체들은 서면 지역을 선택한 이유로 1·2호선 환승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고,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 있어 집객 효과가 뛰어난 점을 꼽았습니다.

빕스 등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가 서면 일대에 모두 모여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2005년 10월 27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부산일보DB빕스 등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가 서면 일대에 모두 모여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2005년 10월 27일 자 <부산일보> 기사입니다. 부산일보DB

2000년 후반에는 다양한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인기를 끕니다. 2007년 자갈치시장 현대화 건물 5~6층에 대형 해산물 뷔페인 '오아제 부산점'이 문을 열었고, 같은 해 해운대 신시가지에는 '드 마리스'라는 곳이 문을 열었죠. 이듬해에는 부산진구 전포동 밀리오레(현재 NC백화점 서먼점) 1층에 초대형 해산물 뷔페 '토다이 서면 밀리오레점'이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한식뷔페, 고기뷔페, 스시뷔페 등이 등장하기도 했죠.

2010년대 이후부터는 SNS가 발달하면서, 맛집 찾기 열풍이 입니다. 양보다 질,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문화가 됐죠.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도 맛 못지않게 중요해졌고요. 또 특별한 대접도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고기를 직원이 구워주는 곳도 많아졌죠. 100% 예약제로 소수의 손님만 받는 식당도 많아졌고요. 요즘은 '오마카세(주방 특선)' 식당이 부쩍 많아진 것 같죠?

최원준 맛칼럼니스트는 이같은 현상을 "과거 부산은 피란민들이 모이던 곳이어서 저렴한 돈으로 푸짐하게 음식을 내어주는 문화였지만, 소득이 높아지면서 점점 고급화되고 다이닝화 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 그때 그 사람

서면 영광도서에서 서면문화로를 따라 140여m 떨어진 곳에 '호수그릴'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하야리아 부대 장교 식당의 셰프 출신인 최기수 씨가 운영하던 곳이죠. 취재진은 창업자 최 씨의 아들이자 호수그릴 부사장이었던 최승규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아들 최 씨를 통해 부산의 3대 그릴로 불렸던, '호수그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스테이크를 파는 양식당에는 '그릴'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부산에는 남포동 청탑그릴, 서면 호수그릴, 범일동 석화그릴이 3대 그릴이었다고 합니다.

호수그릴은 1972년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서면교차로 현 부산은행 건물 근처였습니다. 30평 남짓한 작은 건물에서 시작했죠. 바로 근처에 당시 부산진경찰서와 부산진구청이 있었습니다. 외식 문화가 익숙하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주변 관공서 덕분인지 장사가 잘됐습니다. 3년 뒤엔 롯데호텔 맞은편 큰 길가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당시엔 롯데호텔이 아닌 부산상업고등학교가 있었죠. 영광도서 근처로 자리를 옮긴 건 1980년쯤이라고 하네요.

2003년 호수그릴의 식당 내부 모습입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함께 고풍스러운 느낌의 식당이었죠. 최승규 씨 제공2003년 호수그릴의 식당 내부 모습입니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함께 고풍스러운 느낌의 식당이었죠. 최승규 씨 제공

호수그릴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고급 양식 레스토랑이었는데요. 식당에 들어가면 샹들리에 장식이 있었고, 그랜드 피아노도 놓여 있었습니다. 서빙은 양복을 차려입은 웨이터가 전문적으로 했죠. 스테이크류는 식지 않도록 소 모양의 철판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수입한 특수강으로 제작된 철판이었다고 하네요. 식당 분위기가 좋다 보니, 이곳에서 선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서면 일대가 상업 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손님을 대접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찾기도 했습니다. 2층엔 단체석도 있었는데요. 동창회나 회의, 모임 등을 이곳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로타리 클럽'도 매주 두 번 이곳에서 오찬 모임을 했다네요.

호수그릴은 해운대구 송정동에도 분점인 '호수바이칼'을 오픈하는데요. 당시 송정이 떠오른다는 기대감에 문을 열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탓이었을까요. 송정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가졌지만, 기대만큼 매출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본점의 매출로 버티면서 운영을 이어갔죠.

서면 호수그릴의 분점인 송정 호수바이칼의 2003년 모습입니다. 송정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죠. 최승규 씨 제공서면 호수그릴의 분점인 송정 호수바이칼의 2003년 모습입니다. 송정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죠. 최승규 씨 제공

다행히 본점은 잘 버텨줬습니다. 호수그릴이 생긴 이후로 '그릴'이라는 이름이 붙은 양식당 네 곳이 더 생겼지만, 이곳만큼 오래도록 명맥을 이어가진 못했죠.

하지만 본점도 위기를 만납니다. 최 씨는 폐업 때까지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IMF와 광우병 파동,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의 등장이었죠. 앞서도 언급했지만, 2000년 중반 베니건스, 아웃백, 빕스 등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이 서면에 들어섰죠. 다른 위기는 다 넘겨냈지만, 쓰나미처럼 몰려온 기업형 프랜차이즈들은 개인의 역량으로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최 씨는 "아웃백 매장에 손님들 얼마나 있는지 가서 보기도 했어요. 저희가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거죠"라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호수그릴은 결국 2008년쯤, 35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습니다. 이제 부산 호수그릴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호수그릴의 1대 총괄주방장이 고향인 경남 사천시에서 운영 중인 '호수 레스토랑'인데요. 호수그릴의 방식대로 야채스프, 함박스테이크, 경양식 돈가스 등을 팔고 있다네요. 올해 초 이곳을 찾은 최 씨가 인증하길, 그 시절 호수그릴의 맛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그당시 서면 호수그릴의 음식입니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야채스프, 모닝롤, 등심스테이크, 안심스테이크 입니다. 최승규 씨 제공그당시 서면 호수그릴의 음식입니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야채스프, 모닝롤, 등심스테이크, 안심스테이크 입니다. 최승규 씨 제공

"아버지가 직접 메뉴를 개발하셨어요. 스테이크 소스도 아버지 레시피라서, 다른 곳에서는 이 맛을 느끼기가 어렵거든요. 이제 이곳에만 호수그릴의 흔적이 남아있죠."

최 씨는 올해 2월, 자신의 블로그에 호수그릴 사진이 담긴 포스팅을 올렸는데요. 그 게시물에는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방문자 조회수가 찍힌다고 합니다. 최 씨는 아직도 호수그릴을 기억하는 분들을 보면 신기한 마음과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서면 맛집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왔겠거니' 생각했는데, 검색어 통계를 보니까 '호수그릴'을 검색해서 들어온 분이더라고요. 문 닫은 지 10년이 더 넘었는데, 아직 기억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글=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일러스트=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